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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핵무기 계획, 탄생과정, 군사작전인 맨해튼 프로젝트

google' 2023.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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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미국의 핵 물리학자이며 세계 최초로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줄링스_로버트_오펜하이머_사진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맨해튼 계획

제 2차 세계 대전중 미국의 주도로 영국, 캐나다가 참여한 핵무기 개발 계획임

핵무기 개발 계획은 극비리에 진행되었으며 그 와중에 미국이 핵분열 반응을 이용한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을 포함 물리학자인 오늘의 주인공 오펜하이머, 닐스 보어, 엔리코 페르미, 폰 노이만, 파인만, 애그뉴 등이 차출되었다.

이 계획의 총책임자는 미 육군 소장 레슬리 그로브스로 프로젝트 시작과 중간에 이례 없는 승진을 하였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원래가 계획이나 연관 또는 연상되지 않는 무작위의 이름으로 지어지게 된다. 맨해튼 계획 역시 뉴욕의 맨해튼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하나부터 열까지 기밀이었으며 미국의 약 30 군대 시서에서 연구를 진행했었다. 미국만이 아닌 캐나다와 영국 대학들에서도 계획이 진행되었다. 

 

 

핵무기의 탄생 과정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날이라고 보는 1939년 9월 1일은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개시한 1939년 9월 1일로 보고 있다. 지금의 폴란드가 우리나라의 FA-50 경공격기, K9 자주포와 K2 전차등 11조가 넘는 금액으로 무기를 수입했으며 추가로 다연장 로켓과 추가 자주포 전차 등을 모두 합쳐 30조 원이 넘게 수입하는 이유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그해 헝가리 출신의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가 주장하고 아인슈타인이 쓴 편지 때문에 아주 작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맨해튼 프로젝트는 13만 명의 연구 인력으로 그 규모를 키웠으며 핵무기 탄생에 쏟아부은 금액은 당시 돈으로 20억 달러, 2023년 기준으로 따지면 330억 달러, 대한민국 환율로 따지면 39조 9600억 원이 된다. 한국의 1년 국방예산 약 57조의 70%를 쏟아부은 거대 프로젝트이다.

 

이때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가 작전을 허가하고 루즈벨트가 사망한 후 대통령이 된 트루먼이 이 프로젝트를 알고 나서는 최대한 빨리 핵폭탄을 개발 완료 하라고 독촉했으며 당시 나치 독일로부터 미국과 유럽을 지키기 위해라는 목적으로 예산을 무한정으로 지원하여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었다.

 

그 결과 2차 대전의 종전이 가까워지던 1945년 7월 멕시코주 앨라모고도의 폭격연습장에서 인류 최조의 핵폭탄 실험이 성공리에 진행되었으며 이 핵실험의 이름은 트리니티였으며 사용된 폭타의 이름은 가젯(gadget)이었다고 한다.

 

오펜하이머 공식 홈페이지

 

오펜하이머 | 공식 사이트 & 예고편 | 2023년 8월 15일 대개봉

크리스토퍼 놀란 각본 & 감독, 킬리언 머피 주연 영화 <오펜하이머>의 예고편을 확인하세요. 2023년 8월 15일 개봉예정

www.oppenheimer.co.kr

 

대량 살상 무기 제작 군사작전

미국 국방부가 실전에 사용할 대량 살상 무기를 제작하는 군사 작전으로 맨해튼 프로젝트는 엄밀히 말하면 군사작전이었다. 그리고 이 군사작전의 총책임자는 과학자들이 아닌 군인인 레슬리 그로브스 육군 대령이었다. 그로브스 대령은 이 프로젝트의 시작과 함께 준장으로 승진을 하였고 프로젝트 중에 소장으로 다시 한번 더 승진을 하게 된다. 

 

 

이 블로그 피드의 제목이며 영화로도 제작된다는 오펜하이머는 총 책임자가 아닌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의 소장이었다.

오펜하이머는 핵폭탄 자체를 개발하는 이론 기술 분야 전반에 대하여서는 사실상의 총책임자는 맞지만 전체 프로젝트를 총과 지휘하며 인력 보충과 예산반영, 부지선정, 원료의 계약등 모든 분야에 대한 것은 그로브스가 맡았다고 한다. 그로브스 장군 역시 군인 이전에 MIT에서 공부할 정도로 이공계 분야에서 식견이 충분했으며 이 때문에 과학자들을 지휘하고 조율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로브스 장군은 미 육군 공병단 소속으로 프로젝트 참여 전 대령의 신분으로 미국 국방부인 펜타곤을 단 6개월 만에 완벽하게 건설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 공로를 인정하여 준장으로 진급하게 되었으며 "펜타곤을 잘 만든 솜씨를 보니 원자폭탄도 잘 만들겠군!"이라는 군바리들 특유의 똘끼로 상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을 맡았다고 한다. (저 글이 진짜 미친 농담도 아니고 미 국방부인 펜타곤 건설을 하면서 보여준 목표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추진력과 성공한 성과가 있어서 승진도 하고 프로젝트 책임자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였으면 그로브스는 그냥 행보관이다)

 

일본의 항복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미친 일본의 제국주의가 극에 치닫고 있어 군부 내에서 갈등부터 전쟁에서 이기겠다는 일념하에 카미카제(전투기로 몰고 상대진영, 주고 전함이나 항공모함으로 비행기 몸통 박치기를 함)나 반자이 돌격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총검을 착검하고 연합군에게 돌격하여 백병전을 도모)을 하며 "천황 폐하 만세"를 부르짖고 죽어 나갈 때도 옥쇄(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짐, 명예나 충절을 위해 깨끗하게 죽어라)라 칭했다. 이런 돌아이 짓거리가 가능하도록 돌격이나 출격 전에 메_스_암_페_타_민 과 같은 마_약을 병사에게 투여하기도 했다고 한다.

2차 대전의 막바지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은 진주만 공습, 남방작전 등 승기를 잡은 듯 보였지만 잠시 운이 좋았을 뿐 잠자는 미국을 괜히 건드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당시 미국의 한 제독은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일본어를 지옥에서나 쓰는 언어로 만들어 버리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엔 미국이 원자폭탄 실험을 성공리에 끝마치고 무려 2번,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폭탄이 투하되며 힘의 차이를 자국의 국민들을 불구덩이에 빠뜨리고 나서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이때 항복을 하지 않았어야 되는데....

이때 일본이 항복하지 않았다면 연합군은 몰락작전(Operation Downfall)이라는 일본제국을 멸망시키기 위한 작전을 구상 완료 했었다. 일찌감치 항복하는 바람에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만약 실행되었다면 연합군의 압도적인 군사력일 일본 본토에 그래도 상륙하여 일본 열도를 광범위하게 아작을 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작전상에는 초기에 180만 병력이 일본 제국 본토에 투입될 예정이었으며 초기 병력으로도 작전이 장기화될 때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할 예정이었다.

이는 태평양을 건너 수백만 군인들의 보급을 책임질 수 있는 막대한 산업력을 보유한 미국만이 가능한 작전이었다.

 

평화의 시작

미국과 오펜하이머, 여러 과학자들 그리고 그로브스가 만들어 낸 핵무기의 등장 이후 전 세계에서 전면전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핵무기 생산국은 현재 미국을 비롯하여 러시아(이전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파키스탄, 우리나라 북쪽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이스라엘 등이다. 핵확산 저지로 핵무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해체해서 없는 나라로는 남아프리카,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러시아의 공격으로 고전을 하고 있다 만약 가지고 있었던 핵무기를 해체하지 않고 보유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미국의 핵우산 발언이 있었는데 핵무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핵 개발이 의심되는 국가로는 미얀마,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등이 있고. 핵무기 개발을 시도한 국가로는 우리 대한민국, 독일, 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알제리, 일본, 이라크, 이란, 등이 있다고 한다.
인류가 스스로를 우주에서 없어지게 만들 수도 있는 막강한 폭발력을 가진 핵무기를 개발 함으로 인해 평화는 왔지만 그 힘의 공포가 서로에게 무서운 이빨을 들어 내놓고 으르렁 거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한국의 핵개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인 서균렬 교수님은 핵기술 핵무기 제조는 그 제조 시설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실제 핵복판은 저급의 기술이며 한국도 6개월 정도 면 만든다고 한다.
40여 년 전에 벌써 공릉동에서 실험을 했으며 지하 3층 높이의 건물이면 우리가 필요한 핵무기에 필요한(농축 우라늄) 양은 충분히 생산 가능하지만 국제 원자력기구의 자진 사찰을 받고 인력도 해체되었고 상당이 많이 폐기되었지만 대전 공릉동 또는 대전 유성구 모처엔 기기도 보관되고 있고  인력은 해체되었지만 아직 살아 있는 분들이 있으며 생존해 계시는 과학자 열 분을 모셔서 3개월이면 전자설계하고 다음 3개월이면 우라늄 12.5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핵무기라는 건 있는 것과 없는 건은 하늘과 땅 차이이며 핵무기의 크고 작음은 중요치 않다. 전쟁억제형의 핵무기는 크기와는 상관이 없다고 한다. 맞는 말 같다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러시아의 푸틴이 섣불리 침공을 하였을까? 그때 당시 핵폐기를 하면 미국과 영국이 안보보장을 해준다고 해놓고 지금은 강 건너 불 보듯 하듯이 한미 동맹도 중요하지만 실제 전쟁 발발 시 미국이 우리나라 수도가 초도화 되기 전에 무엇을 할 수 있는 건가? 미사일 떨어지고 난 뒤엔 아무 의미도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서균렬 명예 교수님의 영상으로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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